- 쿠로코의 농구 하야마 코타로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78회 주제 : 고슴도치 딜레마
고슴도치 딜레마
written by Esoruen
미하네는 자신의 글이 실린 잡지를 조심스럽게 펼쳐보았다. 한 달에 한 번 발간되는 문학잡지. 자신의 데뷔 단편이 실렸기도 하고, 지금 자신이 속한 출판사의 메인잡지이기도 한 그 문학잡지엔 언제나 자신의 글이 수록될 때 마다, ‘소녀 작가, 타네구치 미카의 신작’ 이라는 문구가 대서특필 되었다. 소녀 작가라니. 얼마나 팔아먹기 좋은 자극적인 포장인가. 미하네는 자신이 소녀 작가라고 불리는 것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가장 싫을 때는, 역시 돈을 위해서 제 글을 팔아먹기 위해서 그 호칭이 쓰일 때였다.
마치 미숙한 글도 이런 수식어만 붙이면 잘 팔릴 거라는 듯 주렁주렁 단 수식어. 자신은 그런 것 따위 필요 없는데. 왜 출판사는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걸까. 속상하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그녀가 착한 아이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과 말싸움을 하는 것조차 싫을 뿐.
“어, 저번부터 계속 쓰던 글 나온 거야?”
언제 돌아온 걸까. 조심스럽게 책을 확인하는 그녀의 목을 끌어안은 것은 2년간 자신과 같은 반인 클래스메이트, 하야마 코타로였다. 아니, 물론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끌어안는 사이를 단순히 같은 반 친구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을까. 어찌 되었든 그녀는 자신과 그의 관계를 ‘클래스메이트’라고 표현했다. 적어도, 아직은 말이다.
“응… 언제 왔어?”
“오늘 연습 빨리 끝났거든! 미하네는 아직 안 돌아가고 있었구나!”
“어쩌다 보니…”
사실은 하야마를 기다린 것이지만, 그녀는 능숙하게 거짓말을 했다.
“나 읽어봐도 돼?”
“…상관없지만…”
벌써 글을 쓴지도 오래 되었는데. 아는 사람에게 글을 보여주는 일은 언제나 긴장된다. 제 머릿속과 마음속을 다 읽히는 기분이라. 제 해부도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느낌이라.
미하네의 손은 하야마에게 잡지를 넘기는 동안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새하얀 손이 파르르 떨고 있자, 카디건으로 꽁꽁 싼 새하얀 몸이 더 연약해 보인다. 고개를 가볍게 까딱이고 책을 받은 그는 소리 내어 단편의 제목을 읽었다.
“고슴도치의 딜레마… 뭔가 있어 보이네! 이거!”
“실제로 있는 용어야”
“에? 무슨 뜻인데?”
“추운 날씨에 2마리의 고슴도치가 모여 서로를 따뜻하게 하고 싶어 하지만 서로의 바늘 때문에 접근할 수 없다는, 쇼펜하우어의 우화에서 나온 말이야. 그러니까… 인간관계에서 서로와 친해지고 싶지만, 상처입지 않으면 가까워 질 수 없다는…”
공부를 가르치듯 제가 알고 있는 개념을 알려주던 그녀는 어리둥절한 하야마의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하긴, 제가 생각해도 너무 어렵게 설명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장점은 상대에 눈에 맞춰서 말을 주무를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그녀는 하야마의 앞에서 자꾸만 제 편한 모습이 나오는 게 두려웠다.
언제나, 본질을 보려 주는 일은 무서운 거였으니까.
“…간단하게 말하자면, 하야마 군이 땀에 젖은 채로 날 껴안고 싶어도 내가 땀에 젖을까봐 망설이는 그때의 감정이야”
“이해했어!”
“그래, 다행이네”
쿡쿡. 소리 내어 웃은 미하네는 가방을 마저 챙기고 하야마의 독서가 끝날 때 까지 기다렸다. 솔직히, 이번에 쓴 글은 자신이 생각해도 마음에 든다. 그러니 하야마가 본다고 해도 죽을 정도로 부끄럽진 않았다. ‘으으음’ 교과서를 읽을 때와는 다른, 묘한 신음을 내뱉으며 책에 빠져있던 하야마는 갑자기 고개를 들고 물었다.
“늘 생각하는 건데, 글 속에 나오는 여자랑 미하네는 엄청 느낌이 달라!”
“그래?”
“응!”
“뭐, 나는 나고 책 속의 인물은 책 속의 사람일 뿐이니까…”
사실 지금 자신도 진짜 자신의 모습이라곤 할 순 없지만. 언제 어디서나 ‘괜찮다’ ‘내 의견은 신경 쓰지 마’ 라고 하는 자신은 인간에 질려 소통을 포기한 겁쟁이였다. 그래, 어쩌면 이번 소설은 자신의 본질을 가장 잘 담아낸 글일 수도 있겠지.
그걸 하야마가 모른다면, 그것만큼 다행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미하네가 다시 한 번 소리 죽여 웃었다.
“아, 또 웃었다”
“…아, 미안. 비웃은 거 아냐”
“응? 아니아니, 그렇게 생각 안했어! 왜냐하면 엄청 기분 좋아보이는 웃음이었으니까!”
제가, 그렇게 웃었나? 다른 사람 앞에서? 하야마의, 앞에서?
어쩐지 조금 부끄러워 진 미하네가 가방에 얼굴을 파묻었다. 물론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린 하야마는, 제 말에 그녀가 부끄러워 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