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HERE

written by Esoruen

 

 

눈을 뜨니 펼쳐진 것은 눈부신 바다 속 이었다.

호흡을 할 때마다 올라오는 기포. 뽀그르르. 영상에서나 들을 수 있던 수중의 호흡소리. 눈이 아프지도, 숨이 가쁘지도 않은 것을 확인하고야 나서야 니토리는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바다 속 한 가운데, 부유물처럼 떠있는 니토리의 주변엔 이름 모를 열대어들이 바쁘게 헤엄쳐가고 있었고 발밑에는 광활한 파스텔 톤의 산호 밭이 펼쳐져 있었다. 천국이 있다면 여기일까. 니토리는 자신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손발을 움직이자 가라앉지도 않고 움직이는 제 몸이, 저항하지 않는 물이, 마치 니토리 자기 자신이 물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들었다.

평소에 수영하듯, 앞으로 수영해나가자 열대어들은 자신을 스쳐지나갔고 커다란 가오리는 수면에서 오는 빛을 가리는 파라솔처럼 커다란 그림자를 만들며 제 머리 위를 지나갔다. 그리고 저 멀리, 자신을 향해 헤엄쳐오는 거대한 물체.

그것은 상어였다. 붉은 상어였다.

처음에는 상어라는 사실에 놀란 니토리였지만, 곧 니토리는 진정하고 헤엄치는 것을 멈추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상어는, 어느새 자신의 룸메이트 선배로 바뀌어 있었다.

 

“선배”

 

반가움에 불러보자, 린은 어느 때와 같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인다. 퉁명스러워 보여도 속으로는 반가워하고 있음을 니토리는 알았다. 아름다운 풍경, 좋아하는 선배. 완벽한 꿈. 니토리는 기쁨에 찬 얼굴로 린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린에게 닿지 않았다.

물의 흐름이 바뀌고.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난다. 열대어들은 니토리의 뒤로 헤엄쳐갔고, 무엇보다 맑던 바닷물이 새까만, 우중충한 색으로 물들어갔다. 소용돌이는 린을 삼켰고, 제 몸은 소용돌이로부터 멀어져만 갔다.

 

“마츠오카 선배! 선배!”

 

아무리 불러도 소용돌이 속에서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제 입에서 나오는 기포가 터지는 소리와 물살의 소리, 그리고 무언가가 가라앉는 것 같은 묘한 기분과 함께. 니토리의 시야는 어둠에 빠졌다.

 

 

 

 

“선배!!”

 

괴성을 지르며 깨어난 니토리는 흥건한 제 침대의 감촉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아직도 바다에 빠져있는 듯, 축축한 시트는 다름 아닌 자신의 식은땀으로 젖어버린 것이었다. 허탈한 한숨. 몰려오는 두통 속에서도 니토리는 더듬더듬 손을 짚어 침대 끝을 잡았다. 몸을 기울여 아래를 보니, 옆으로 누워 눈을 감고 있는 린이 보였다. 아아, 꿈이구나. 분명 꿈속에서부터 꿈인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니토리는 제 밑층에서 잠든 린을 보고나서야 제가 방금 전 본 끔찍한 상황이 꿈인 것을 인정했다.

자기 전 들은 그 말이 문제였던 걸까. 니토리는 머리를 헝클였다. 조금 전, 잠자리에 들기 전 린은 니토리에게 제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선박 침몰로 사고사한 린의 아버지의 이야기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던 니토리에게는 일종의 쇼크였다.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수영하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안 것이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갈 거야’ 무덤덤한 린의 목소리가 니토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처음엔 오해해 버린 그 말. 오해한 자신을 누군가 벌하려 한 것일까. 꿈의 내용을 되뇌며 니토리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았다.

 

“니토리”

“으악!!”

 

겨우 진정하고 다시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 니토리를 놀라게 한 것은, 제 아래쪽 침대에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선배였다.

 

“아, 안 주무시고 계셨어요?”

“뭐, 어쩌다 보니”

 

아마도 시합의 긴장으로 못 잔 거겠지. 니토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래쪽을 내려 볼 용기는 나지 않았기에 니토리는 제 자리에 돌처럼 굳어서, 말을 이어갔다.

 

“어, 얼른 주무셔야죠. 내일 시합인데”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그리고 너. 악몽 꿨냐? 소리를 지르면서 깨고”

“에?! 들으셨어요?”

“그래. 나 부르면서 깼잖아”

 

망했다. 니토리는 새빨개지는 제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왜 자신은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깼는가도 원망스러웠고, 그걸 듣고도 자는 척 한 린까지 미워질 뻔 했다. 부끄러움으로 당황하던 니토리는, 무슨 변명이든 하기위해 두 손을 치우고 아래쪽을 보기위해 몸을 기울이려 했다. 하지만 아래쪽을 보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있는 것은, 뚱한 표정의 린이었다.

 

“으악!”

“뭘 놀라. 무슨 꿈을 꾼 거야? 날 부르면서 깬 이상 나도 듣고 싶다만”

 

사다리 위에서 멈춘 린은 니토리의 침대로는 들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물었다. 잠깐 망설이던 니토리는, 린에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선배가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 죽는 꿈이요”

“하아?”

“꼭 태풍 치는 날의 바다 속 같은 곳에서, 선배가, 내가 구해주지도 못하고… 저는… 으… 으아…”

 

겨우 멈춘 것 같았던 니토리의 눈물이 다시 흘러내리면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발음들이 뭉개졌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아니 흐느낌에 가까운 무언가를 뱉어내던 니토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린은 갑자기 울어버리는 후배와 꿈의 내용에 당황해, 사다리 위 반 허공에서 멍하니 서있었다.

 

“어, 어이 니토리”

“으아, 흑, 으으…”

“니토리!”

 

울음을 그치지 않는 니토리의 손목을 낚아챈 린의 손은, 어느 때 보다도 힘이 들어가 있었다.

 

“뚝 그쳐! 난 여기 있어! 그런 꿈에 뭘 우는 거야?”

“마, 마츠오카 선배…”

“나 참, 두 명 다 악몽을 꾸다니. 여기 터가 안 좋은 거 아냐? 어이가 없어서”

 

애꿎은 자리를 탓한 린은 니토리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새빨간 자국이 난 손목에 니토리는 놀라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자국이 난 제 손목위에 제 손을 겹쳐볼 뿐이었다.

 

“얼른 자. 나도 잘 거니까”

“아, 네, 네!”

“…악몽 꾸지 말고”

 

마지막 말은 혼잣말처럼 작은 소리로 한 말이었지만, 니토리는 그 말을 놓치지 않고 들었다. 대답의 뜻으로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린은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제 침대로 돌아갔다.

 

“잘자”

“선배도요”

 

아래 침대에서 들려오는 굿나잇 인사에, 니토리는 잠긴 목으로 대답하고 누웠다. 눈물자국이 난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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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니토라고 표기하는게 정석(?)인지 린토리라고 표기하는게 정석인지 몰라서 둘 다 썼습니다. 린토리도 린니토도 많이 써서 둘다 맞는것 같긴 한데.. 린토리가 발음은 편하네요.

사메즈카 선후배 커플이 사랑스러워서 참을수가 없습니다. 엉엉. 7화가 저에게 이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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