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CU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피터 퀼(스타로드)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24회 주제 : 페로몬
페로몬
written by Esoruen
피터 퀼이 개인적으로 슬쩍하는 물건에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가장 많이 슬쩍하는 것은 고가의 물건. 보석이나 비밀창고의 열쇠, 심지어 멸종된 외계생명체의 박제까지. 돈만 된다면 뭐든 욘두가 모르게 슬쩍 빼내어 제 용돈으로 쓰는 그에게 있어서, 작고 비싼 것은 최고의 약탈품이었다.
두 번째로 많이 슬쩍하는 것은, 역시 돈 그 자체였다. 이건 사실 돈다발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적으니 용돈도 안 되는 푼돈 수집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렇게 고가의 물건도 아니고, 돈도 아닌 것들 중 그가 몰래 챙길만한 물건이 또 뭐가 있을까. 보통 사람들은 잘 예상이 안 갈 수도 있겠지만, 피터와 함께 해온 세월이 긴 벨은 답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장난치기 좋은 물건’ 이었다.
“벨, 있어?”
아침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양반이 언제 돌아온 걸까. 벨은 제 우주선을 정비하느라 바삐 움직이던 와중 뒤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설렁설렁 대꾸했다.
“왜? 나 바빠”
“바빠? 왜 바쁜데?”
“뭐 좀 손보느라… 도와줄 거 아님 가”
아무리 매일 10년 정도 봐온 사이라지만 참으로 쌀쌀맞은 반응이다. 애초에 이런 말투에 상처받을 그도 아니지만, 피터는 이제 익숙하다는 듯 음흉하게 웃으며 코트도 벗고 조종석에서 일하는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도와줄게, 그럼 안 가도 되는 거지?”
“어? …나야 고마운데,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아 거 참 나를 뭐로 보고…”
뭐긴 뭐야. 매일 욘두에게 잔소리 듣고 동료들에게 구워지니 삶아지니 소리 듣는 라바저 최고의 트러블메이커지. 뭐, 그와 동시에 욕을 먹어가면서도 제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긴 하지만… 은인도 은인 나름이지 않은가.
“뭐가 문제야? 여기 있다는 건 엔진 문제는 아닐 테고. 그렇지?”
“계기판이 이상해서 그런데…”
어라. 벨은 제 뒤에 찰싹 붙어 이것저것 묻는 그에게서 묘한 이질감을 느끼고 입을 닫았다. 분명 목소리도 하는 짓도 평소의 피터 퀼인데. 왜 평소와 다른 느낌으로 느껴지는 걸까. 수상하다는 얼굴로 돌아본 벨은 히죽거리며 웃는 그의 얼굴에서 수상한 기운을 읽었다. 뭔가 장난을 치려고 왔구만. 그녀의 직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왜 그래?”
“아니 그냥 네 웃는 얼굴이 수상해서”
“왜 평소보다 더 잘생겨 보여?”
“평소보다 더 때려주고 싶어지긴 했는데…”
아니 사실은 피터의 말이 맞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평소에도 잘생겼다고 생각한 얼굴이 오늘따라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부정 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겨우 반나절 못 본 걸로 보고 싶어서 콩깍지가 생길만큼 풋풋한 시기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나지 않았나?
고민하고 있던 그녀에게 답을 준 것은 얼굴로 다가온 그의 손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묘하게 달짝지근한 향이 풍기는 손목에 인상을 찌푸린 그녀는 재빨리 피터의 두 손을 잡았다.
“너 향수 뿌렸어?”
“오, 맞췄다. 향 좋지?”
“좋긴 한데 너랑 안 어울려. 야시시한 향이 나서 기분 나쁜데… 이거 여자 향수 아냐?”
만약 그렇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벨은 피터를 보며 웃어도 웃는 것 같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또 촉수 드글드글한 여자들이랑 놀고 오셨어요, 스타 로드 씨~?”
“아, 아, 아니야! 그런 거 아니니까 저기 손목 비틀지 말아줄래? 마르소 양? 마르소 님?!”
“그럼 10초 안으로 기승전결 살려서 해명해 봐”
10초는 너무하지 않을까. 적어도 20초는 필요할 거 같은데. 머릿속으론 그런 말을 하면서도 피터는 이미 랩이라도 하듯 빠른 속도로 전후사정을 전부 털어놓았다.
“오늘 재밌는 걸 발견해서 써본 것뿐이야, 페로몬 향수라고 요즘 유명하다던데 호기심에 뿌렸어 그것뿐이야!!”
“거짓말 아니지?”
“당연하지, 방에 향수 있어. 가져올까?”
증거물이 있다면 의심할 필요는 없지. 벨은 그의 손을 놔주고 한심한 등짝을 향해 있는 힘껏 손을 휘둘렀다. 퍽. 퍽. 으악! 호쾌한 타격음과 작은 비명.
“그런 게 진짜 먹힐 거 같아? 은근히 바보라니까? 아, 바보였지”
“아무리 그래도 애인에게 바보라는 말은 좀 심하지 않아?”
“머저리라고 고칠까?”
“아, 그러지 말고. 너도 얼굴 빨개졌으면서”
“내가?”
그럴 리가 있나, 라고 말하려던 그녀는 제 볼을 만져보고 황급히 입을 닫았다. 진짜 그 페로몬 향수라는 것은 효과가 있었던 걸까. 제 볼은 확실히 과열된 엔진처럼 뜨겁게 달아올라있었다.
“…이 화상아!”
“?! 아니 왜 때리는 거야?!”
“그 나이 먹고 장난이나 치고 잘 한다!! 욘두가 안 잡아가고 뭐하나 몰라!!”
퍽. 퍽. 그만. 잠깐만!
한참이나 울려 퍼지던 피터의 비명과 주먹질 소리는 적어도 30분이나 지난 후에야 겨우 사그라들었다. ‘또 뭔가 사고를 쳤나보군’ 물론 그 비명과 폭력의 하모니를 들은 라바저 대원들 중, 그 누구도 두 사람의 싸움을 말리러 가는 사람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