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ep your Friends Close, But enemies are Closer

친구는 가까이, 하지만 적은 더욱 가까이

  - The Godfather, Part II 中

 

 

 

요란스러운 사이렌 소리에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소리를 지르는 간부부터 변명하느라 바쁜 말단까지, 미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유명 보안업체의 본사는 지금 패닉에 빠져있었다. 고객의 정보와 보안 시스템이 보급되어 있는 전산망이 전부 어디론가 유출되었다는 것을 유출 된지 3일 만에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3일이라고 3일! 이렇게 늦게 발견한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면목 없습니다! 지, 지금 최대한 복구해 보고 있습니다!”

 

나 참. 식은땀이 흐르는 얼굴에 손부채질을 하며 딱 봐도 연륜이 있어 보이는 간부는 사과하느라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부하직원을 보며 자신이라도 진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직 이 사실을 아는 것은 회사 직원들 뿐. 어떻게든 입단속을 시키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저어, 사실 침입방법은 몰라도, 침입자의 정체는 대강…”

“뭐? 그걸 왜 이제 말하나!”

“그것이…”

 

굉장히 난처한 표정을 지은 부하직원은 간부를 가까운 컴퓨터 앞으로 데려갔다. 컴퓨터 앞에서 자료와 씨름을 하던 말단직원을 가볍게 치워버린 그는 수십 개의 비밀번호를 차례차례 입력해가, 고객 정보를 모은 폴더를 열었다. 폴더에 남아 있는 것은 텍스트 문서 하나 뿐. ‘dear’ 이라는 수상한 이름의 문서를 열자 나타난 것은 심플한 한 문장.

 

“이, 이건”

“네, 놈들입니다…”

문서에 써져있는 말은, 이런 대범한 짓을 한 자가 쓴 것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I am Sorry’

 

 

 

Black Beast

 01

 

 

 

사쿠라이 료는 구부정하게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가 눈을 떴다. 책상 위 전원이 켜진 노트북의 화면엔 수많은 문서가 띄워져 있었다. 아아, 나. 일하다가 잠이 든 거구나. 자신의 상황을 재빨리 알아챈 그는 허리를 바로 세우고 기지개를 폈다. 책상은 꽤 넓은 편이었지만 노트북 외에 책상을 차지하는 물건들, 예를 들어 다 먹고 버리지 못한 패스트푸드의 쓰레기들이나 카페인 음료 캔들이 자리를 다 차지해 버리는 바람에 사쿠라이의 책상은 늘 지저분했다. 잠이 덜 깬 그가 눈을 비비고, 다시 화면을 직시하고 뻣뻣한 손가락을 자판 위로 올리자

타닥. 탁. 타닥. 타다닥. 타다다닥.

마치 자동화된 기계처럼 그의 손가락은 엄청난 속도로 자판을 누르고 있었다. 본래도 타자가 빠른 사쿠라이였지만, 이렇게 자다가 깨서 일하고, 다시 잠드는 분위기에 몸이 적응해 버린 탓에 그는 언제 일어나도 손만큼은 재빠르게 일 할 수 있었다.

 

“체리 보이(cherry boy)”

 

한참을 타자를 두드리며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바깥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체리 보이’ 조직에서 그의 코드네임이었다. 지하실에 있는 자신에 방에 굳이 찾아올 사람은 굉장히 한정적이었지만, 무엇이든 귀찮은 일 때문인 적이 많았기에 사쿠라이의 표정은 반사적으로 굳어지고 말았다.

 

“드, 들어오세요!”

 

끼익. 낡은 문이 비명을 질렀다. 컴퓨터 화면의 빛이 전부이던 방에 빛이 몰려들어왔고, 그 빛에 떡하니 그림자를 만들며 걸어 들어 온 사람은 단정한 슈트 차림의 이마요시였다. 무테안경은 오늘도 신경 쓰일 때 마다 닦은 것인지 얼룩 하나 없이 반짝반짝 했고, 붉은 빛 와이셔츠는 매일 다린다는 것이 티가 날 정도로 반듯했다.

 

“아이고, 이제 일난기가. 수고가 많구마”

“아, 그, 야누스(Janus)씨”

“얼마 전에 크래킹, 수고했다고 보스가 전해달라고 하데”

 

이마요시는 발소리도 없이 사쿠라이에게 걸어갔다. 그가 보스의 말을 전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는 보스의 오른팔이었으니까. 사쿠라이는 막상 칭찬받자 머쓱해 져선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은 누가 봐도 10대 소년 같아서, 이마요시는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천재 해커 사쿠라이 료. 통칭 ‘Cherry boy’

중국의 유명 해커들도 못 당해낸다는 바이러스를 만들고, 보안 시스템을 적당히 유린하며 해킹을 하는 이 청년의 나이는 겨우 23살이었다.

 

“아니, 전 제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그, 죄송합니다!”

“니는 그 사과하는 버릇 좀 고치라켔제? 하이고, 그리고 그 사과, 해킹하고 오는데 남기는 건 악취미 아인가? 마, 보스는 오히려 경고 의미로 보이니 좋다고 내버려두라 켔지만은”

“하하…”

 

곤란함을 감추려는 듯 웃은 사쿠라이는 숨듯이 도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처음 ‘일’로서 해킹을 했을 때부터, 그는 해킹하고 간 곳에 사과를 써놓고 갔다. 본인은 미안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남들의 눈엔 건방진 도발로 보이거나 경고 표시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느새 하나의 특징이 되어 ‘사과문을 쓰고 해킹하는 괴짜가 나타났다’라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모니터를 향해 완전히 고개를 숙인 사쿠라이를 빤히 보던 이마요시는 어깨를 으쓱하곤 그의 옆에 비닐봉지를 하나 놓곤 방을 나가버렸다. 비닐봉지에는 유명 패스트푸드점 이름이 써져있었다. 사쿠라이는 고맙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이미 이마요시가 나간 것을 확인하곤 봉지 속 콜라를 꺼내 마시며 햄버거 세트와 함께 들어있는 작은 쪽지를 펼쳐 볼 뿐이었다.

일본계 범죄조직 '블랙 비스트 ― Black Beast'

사쿠라이와 이마요시가 몸담고 있는 여기 이 조직의 정식 이름이었다.

 

 

 

이마요시 쇼이치는 엘리베이터 속 거울에 비친 자신을 모습을 보며 살짝 비뚤어진 넥타이를 고쳐 매었다. 새까만 정장, 새까만 넥타이, 유일하게 색을 가진 것은 붉은 와이셔츠 뿐. 이것이 조직원의 정장이었다. 블랙 비스트의 조직원이라면 말단부터 보스까지, 전부 이 복장으로 일을 했다. 일이라 함은 물론 조직의 ‘일’ 이었다.

딩동. 맑은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인 36층에 멈췄다. 매무새를 단정히 정리한 이마요시는 크게 심호흡 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갔다. 길고 넓은 복도에는 이것저것 고급스러운 장식품이 걸려 있었다. 복도의 끝까지 온 이마요시는 복도의 가장 마지막 방에 노크했다.

 

“누구십니까”

“접니다, 보스”

“야누스인가요, 들어오세요”

 

정중한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야 이마요시는 문에 달린 디지털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번호 키 아래 지문 인식기에 엄지를 마주 대었다. 딸깍. 잠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도어락의 인식기에 파란 불이 들어왔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자 그의 보스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요시를 맞이했다.

 

“늘 수고가 많습니다, 야누스”

 

부하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는 이 남자가 바로 이마요시 자신의 상사이자 은인인, 그리고 블랙 비스트의 보스인 하라사와 카츠노리였다.

 

“부르셨다는 소리를 들어서 왔습니다만, 무슨 일 입니까?”

“아아, 큰일은 아닙니다. 우선 앉아서 이야기 할까요”

 

보스는 제 근처 소파에 이마요시를 앉게 하곤 테이블 위의 위스키를 잔에 따랐다. 보아하니 이마요시가 오기 전부터, 쭉 마시고 있었던 것 같았다. 소파의 등받이에 기대 깊은 한숨을 내쉰 보스는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가 머리를 쓸 때 마다 나오는 버릇 중 하나였다.

 

“체리 보이가 얻은 자료는 아웃사이더에게 전해줬나요?”

“네, 방금 체리보이에게 다음 일도 전해주고 왔습니다”

“과연, 믿음직하군요. 야누스”

 

작게 미소 지은 보스는 자신의 유능한 오른팔에게 잔을 내밀었다. 거절하지 않고 얌전히 잔을 받은 이마요시는 보스가 따라준 위스키를 맛만 음미할 수 있을 정도만 입에 흘려 넣고 잔을 내려놓았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잘 절제할 줄 알았다.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조직에 들어오기 전부터 그랬다.

 

“아웃사이더는 아마 오늘 새벽쯤, 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훌륭하군요. 이번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아마 저희 말고도 ‘그걸’ 노리는 조직이 많을 테니까요”

“잘 알고 있습니다. 염려 말아주시지요”

 

으음. 낮은 신음을 흘린 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요시의 염려 말라달라는 말은 빈 말이 아니었다. 이마요시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고 거짓말 할 인물도 아니었고, 할 수 없는 일은 되게 만드는 남자였으니까. 그렇기에 보스는 다른 나이 많고 경험 많은 부하들을 두고 갓 25살이 된 이 청년을, 이마요시를 오른팔로 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 조직에서는 그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직의 아이도 아닌, 고아원에서 버려진 아이인 이마요시를 2인자의 자리에 앉히는 것을 반기는 간부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보스, 하라사와 카츠노리는 그들의 말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제 아버지를 섬겼던 그들을 일본에 그대로 두고, 제 나이에 맞는 젊은 부하들만을 데리고 미국으로 건너와 ‘블랙 비스트’를 조직하고, 해외로의 사업에 손을 뻗었다.

하라사와는 제 아버지와 그 조직을 좋아하지 않았다. 일본의 야쿠자는 이미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런 그의 생각에 동의하고 그와 함께 이 낮선 미국으로 건너온 것이 지금의 블랙 비스트 간부들과 이마요시처럼 그가 주워온 아이들이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야누스군”

 

술을 홀짝이던 보스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작은 비닐에 쌓여있는 것은 새파란 캡슐 몇 개. 척 봐도 수상해 보이는 물건에 이마요시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아무리 봐도 일반 의약품 같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일반 의약품이었다면 보스의 주머니에서 나올 리가 없었다.

 

“그것, 모르페우스에게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 주실 수 있을까요?”

“요시노리에게 말입니까?”

 

습관적으로 코드네임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버린 이마요시는 아차 하고 가볍게 제 입을 때렸다. 스사 요시노리. 그와 동갑인 조직의 마약상인이었다. 그렇다면 이 캡슐의 정체는 간단히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라면, 분명 극약 아니면 마약일 것이었다.

 

“그 약, LA에서 유행하는 것인데 최근 여기까지 흘러들어온 모양이더군요”

“LA, 말이죠?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유독 LA를 강조한 이마요시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정체불명의 약을 제 슈트 안주머니에 고이 챙겨 넣은 이마요시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를 90도로 숙여 정중히 인사한 그는 먼저 가보겠다는 말만을 남기고 보스의 방을 나왔다. 하라사와는 이마요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역시 눈치가 빨라서 좋군요. 야누스. 역시 제 눈은 틀리지 않았어요”

 

쿡쿡. 낮은 웃음소리가 바깥의 복도까지 들렸다. 이마요시는 제 보스의 웃음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방에서 멀어지고 나서야 핸드폰을 꺼냈다. 단축번호를 누르고 수화기를 귀에 가져가자, 촌스러운 80년대 풍의 컬러링이 들려왔다. 악취미. 세 글자를 내뱉은 이마요시의 입매가 매끄러운 호를 그렸다.

여보세요.

컬러링은 중간에 끊겼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어딘가 피곤해 보였다.

 

“요시노리가?”

“뭐야, 쇼이치”

 

익숙하다는 듯 서로를 이름으로 부르는 두 사람에겐 상하관계의 딱딱함은 느낄 수 없었다. 그들에겐 오히려 오른팔과 부하의 관계라던가 코드네임은 더없이 낮선 것 이었으니까. 아주 어릴 적, 손 하나로 자신의 나이를 셀 수 있을 적부터 두 사람은 친구였다. 친구라기보다는 가족이었다. 같은 고아원에서 자란, 형제와도 같은 사이. 13살 때 지금의 보스에게 거두어 지기 전까지 열악한 환경의 고아원에서 두 사람이 의지 할 수 있는 상대는 서로 뿐이었었다. 어릴 적의 그 기억과 관계는 이렇게 커서까지도 두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서로를 코드네임으로 부르지 않으면 늘 주의를 주던 보스마저도, 이마요시나 스사가 상대방을 이름으로 가끔 부르는 것은 모른 척 해주기도 할 정도였다.

 

“쪼까 일이 생겨서 니한테 줄게 있다”

“어쩌지, 나 지금 거래가 있어서 오늘은 무리인데”

 

거래라는 것은 물론 마약 밀거래였다. 스사의 일은 외국에서 마약을 밀수입해, 개인이나 갱단에 팔아치우는 중간상인― 그러니까 조직의 돈을 벌어오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다. 조직 자체에서 하는 사업은 물론 이것저것 있었지만, 스사처럼 한 사람이 많은 돈을 벌어오는 일은 사쿠라이의 해킹 외주일 외에는 없었다.

 

“그라믄 내가 찾아갈까? 아님 다른 아 시킬까?”

“네가 올 것까진 없고, 그냥 적당히 다른 애들 시켜”

“알았데이, 거래 단디하고 온나”

 

뚝. 깔끔하게 전화를 끊은 이마요시는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고민했다. 자신을 대신해서, 누구를 스사에게 보낼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 같아선 아무 부하나 잡고 심부름을 시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전해줄 물건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이었다. 이건 단순한 마약이 아니다. 그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보스가 이렇게 자신에게 바로 넘겨주는 물건 중, 시시한 물건은 없었다. 그렇다면 믿을 수 있는 부하, 이왕이면 지금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한가한 사람이 필요했다.

 

“아”

 

가가 있었제. 혼잣말을 중얼거린 이마요시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지하 3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아오미네는 벽에 기대 사쿠라이가 건네준 자료를 훑어보았다. 그가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 정확히는 호텔 건물 밖의 구석진 곳이었다.

 

“료 녀석. 자료를 영어로 보내면 어쩌자는 거야!”

 

스마트폰으로 사쿠라이가 보내준 자료를 보며 혼자 소리친 아오미네는 난감하단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블랙 비스트 결성 때, 그러니까 약 3년 전 지금의 보스를 따라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그였지만 그는 아직 영어가 서툴렀다. 자신은 원래 언어에 재능이 없던 것인지, 이미 다른 멤버들은 영어를 어느 정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데 비해 아오미네 자신은 일상 회화나 간단한 문서를 읽는 정도만 가능했다. 그런데 사쿠라이가 보내준 이 자료는 어려운 단어와 전문용어가 빼곡한, 아오미네 자신이 소화하기엔 벅찬 문서였다.

 

‘어이, 료. 좋은 말로 할 때 일본어 번역본 보내라’

 

부탁이 아닌 협박에 가까운 문자를 보낸 아오미네는 품속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새빨간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문 그는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오미네는 기다리는 것이 싫었다. 뭐든 빨리 해결해야 속이 시원해지는 아오미네에게 막연한 기다림이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지이잉. 조용하던 스마트폰이 울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보냈어요, 아웃사이더’

“진작 이럴 것이지”

 

문자를 확인한 그는 새로 온 메일의 파일을 열었다. 새로 온 파일은 전부 일본어로 되어 있었고, 이해하기 쉽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찬찬히 자료를 읽어보던 아오미네는 ‘으음’ 하고 낮은 신음소리를 내더니 담배를 벽에 비벼 껐다.

 

“매일 이런 귀찮은 일은 나만 시키지, 망할 안경”

 

여기서 말하는 망할 안경이란 이마요시 쇼이치를 말하는 것이었다. 보스의 오른팔인 그를 이렇게 막 부르는 것을 일반 조직원 들이 알면 놀라서 자빠질지도 모르는 일이었지만 아오미네에게는 이 호칭이 익숙했기에 간부급의 조직원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일 중 하나였다. 비록 다른 고아원에서 각각 픽업되어 보스의 밑으로 들어온 관계지만, 부모가 없다는 그들만의 공통점은 이마요시와 스사, 그리고 아오미네 사이에 묘한 유대관계를 만들어 냈었다.

 

“그럼, 시작해볼까?”

 

손가락을 꺾어 뚜두둑 소리를 낸 아오미네는 선글라스를 끼곤 호텔 건물의 뒷문으로 다가갔다. 주변을 둘러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스마트폰을 보며 뒷문의 도어락의 번호를 눌렀다. 삑, 사쿠라이가 해킹해준 비밀번호를 누르자 문은 간단히 열렸고, 아오미네는 여유롭게 건물 안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건물 안은 싸구려 전등불만 켜져 있어 그다지 밝지 않았다. 구석구석 쌓인 먼지로 봐선 자주 사용하지 않는 통로임을 알 수 있었다. 발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건물 안쪽으로 들어간 아오미네는 문들이 늘어선 복도에 와서 다시 한 번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여긴가”

 

세 번째 문 앞에 선 그는 망설임 없이 문을 걷어찼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먼지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그는 무의식 적으로 입을 손으로 가렸다. 목과 코를 간질이는 먼지에 몇 번 잔기침을 한 아오미네는 어두운 방 안에 불을 켰다. 환해진 방 안에는, 수많은 종이박스가 쌓여있었다.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고 방 안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아오미네는 박스들을 이리저리 들추며 무언가를 찾았다. 그가 여기 온 이유는, 조직에서 찾아오라는 물건이 있어서였다.

아웃사이더(Outsider)라는 코드네임으로 불리는 아오미네 다이키는 조직에서도 가장 바쁜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의 일은 주로 몸을 쓰는, 특히 발품을 파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뉴욕을 기점으로 움직이는 블랙 비스트는, 뉴욕과 그 근처에선 체계화된 조직화로 정보입수나 일 처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미국의 서쪽으로 갈수록 그 영향이 약했다. 그것을 안 보스 하라사와는 제가 고아원에서 거둔 아이 중 한명인 아오미네를, 그런 영향력이 적은 곳에 일처리를 하기 위해 보내기 시작했고 그것이 3년 동안 계속되어 이렇게 고정된 것이었다. 아오미네의 입장으로선 별로 불만은 없는 일이었다. 자신에겐 조직 안에서 상사를 모시고 부하를 부리는 것 보다 이렇게 혼자 활동하는 것이 편했고, 일의 양도 그렇게 많지 않았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그 얼마 되지 않는 일들이, 모두 리스크가 크다는 것 정도였다.

잠입, 탈취, 그리고 간혹 배신자를 추격해 끌고 오는 일이나 보복성 총격전과 살상까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위험한 일을 하는 사이 아오미네는 자신도 모르게 미간의 주름이 늘어갔고, 성격도 나빠졌다. 사춘기 소년처럼 반항적이라고 장난스럽게 이마요시는 평했지만, 그것은 단순히 장난으로 한 말치곤 정확한 평가였다. 그렇다고 아오미네는 자신이 이런 역을 맡은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할 일. 그렇다면 자신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아니, 자신이 아니면 이 일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자만에 가까운 마음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아. 박스 속을 뒤지던 아오미네는 작게 탄식했다. 찾던 물건을 발견한 것이었다. 검은 파일을 집어든 그는 침착하게 파일을 펼치고 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분명히 사쿠라이가 보내준 자료에 설명되어있던, 자신이 가져와야 할 물건이 확실했다.

 

“나이스. 료 녀석, 역시 이런 건 잘 알아낸다니까”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아오미네는 파일을 옆구리에 끼고 상자들을 원래 모양대로 정리했다. 처음 뒤질 때 너무 난잡하게 어지른 탓에, 모든 것을 원래대로 정리하는 데엔 조금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방을 자신이 침입하기 전과 같이 만든 그는 먼지투성이의 손을 털고 문으로 다가갔다. 닫혀있는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잡은 아오미네는 손목에 힘을 주다가 문득 떠올랐다.

자신이 이 방에 들어올 때, 문을 닫았던가?

달칵. 문을 열고 나간 아오미네가 만난 것은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총구였다.

 

 

 

 

+

 

 

원래는 토오 배포전때 원고로 할 소설이었지만

펑크가 나서 이렇게 웹으로라도 조금씩 올립니다. 천천히, 오래 쓸 계획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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