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로코의 농구 하야마 코타로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136회 주제 : 잊고 있었던
잊고 있었던
written by Esoruen
필통에서 못 보던 샤프가 나왔다.
나한테 이런 샤프가 있었던가? 그런 생각도 잠깐. 하야마는 이 필기구의 주인이 누구인지 떠올리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오늘 3교시. 수학 시간. 갑자기 샤프가 고장 나는 바람에 옆자리의 그녀에게 샤프를 빌렸었지.
“깜빡했네! 돌려주려고 했는데…!”
단정한 검은색 샤프는 제 주인의 성격을 그대로 나타내 주는 것만 같다. 보통 제 또래의 여자애들이라면 좀 더 화려하고 귀여운 샤프를 좋아하곤 하는데, 역시 이런 면으로 봤을 때 미하네는 묘하게 영감님 같은 느낌이 든다. 무늬가 없는 필통. 무채색의 필기구. 올 나간 곳 하나 없는 카디건. 모든 것이 지독하게 어른스러운 느낌이라 다가가기 힘들지만, 막상 말을 섞어보면 역시 다른 여자애들이랑 비슷하다는 느낌도 든다.
어려운 아이란 말이지. 하야마는 제 것도 아닌 샤프로 손장난을 하며 오늘 나눈 대화를 되짚어 보았다.
“샤프가 고장 났다고요?”
같은 반 친구인데도 불구하고 존댓말을 쓰는 건 왜일까. 하야마는 늘 그걸 궁금하게 여겼지만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가정교육을 잘 받았거나, 예의를 중요시 하는 성격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했고, 미하네라면 오히려 반말을 쓰는 쪽이 어색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응. 빌려줘. 안 될까? 나중에 돌려줄게!”
“……”
선생님에게 들킬까봐 소리를 죽여 말하는 자신을 보는 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쓰세요’ 몇 없는 필기구 중 예비용으로 보이는 샤프를 선뜻 내준 미하네는 몇 번 더 자신을 힐끔거리다가 교과서로 시선을 돌렸다. ‘고마워’ 그렇게 대답했지만, 과연 그녀는 들었을까.
‘이상한 애야’
제가 할 말은 아닐지 몰라도 타네구치 미하네는 이상한 소녀였다. 알기 힘들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만, 하야마에게는 그렇게 복잡한 감상 보다는 그저 ‘이상한 애’정도의 표현이 더 적당하리라. 처음에는 조용하고 똑똑한 우등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이미지는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었다.
사실, 초반의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녀는 똑똑하고 조용한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고, 실제 주변의 평판도 대부분 그러했다. 다만 하야마가 의외라고 생각한 것은, 그녀의 눈빛이나 말투에서 묻어져 나오는 그녀의 감춰진 성격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가요?’ ‘어쩔 수 없죠’ ‘다행이네요’ 뭐든 그러려니 하고, 모든 것에 무신경한 느낌. 겉모습은 10대 여고생인데 말투만 들으면 80대 정도의 노인 같은 그녀는 하야마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면서도 동급생 보다는 어르신 같은 태도를 취하곤 했다.
‘꼭 선생님 같다니까’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는 것을 계기로 친해졌다지만, 이래서는 친구를 사귄 게 아니라 과외선생님을 들인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좋은 아침이에요, 하야마 군”
아주 가끔, 그녀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올 때가 있곤 했다.
그게 정확히 언제인가, 하야마는 그걸 정의하고 싶었지만 그는 도저히 떠오르는 적당한 이유가 없었다. 단순히 기분이 좋을 때라고 하기엔 미하네는 언제나 무표정했고, 눈빛과 입매가 따로 놀 때도 많았으니까. 다만 자신을 바라볼 때, 아주 가끔 그런 눈빛이 되곤 했는데…
‘뭔가, 내가 놓친 게 있나?’
애석하지만 그는 제가 별로 섬세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뭔가 미하네와 자신 사이에 주고받은 말들 중, 제가 그녀의 흥미를 끌 만한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그녀는 작가였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필명도 있고 등단까지 한 작가란 말이었다. 작가란 예민한 사람이 많고, 그녀도 실제론 달관한 듯 보여도 예민한 구석이 있었으니까. 어쩌면 자신은 그냥 흘려넘긴 일도 그녀에겐 큰 자극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
“…아아, 몰라!”
생각하는 것은 자신과 맞지 않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 특화된 그는 고민을 관두고 제 것이 아닌 샤프를 도로 필통 속에 넣었다.
내일은 잊어버리지 말고 꼭 돌려주자. 그렇게 다짐한 하야마는 조용히 책을 읽고있는 옆모습을 생각하고,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