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로코의 농구 하야마 코타로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172회 주제 : 메모
메모
written by Esoruen
“미하네! 노트 잘 봤어!”
“…아, 벌써?”
“응!”
별일이네. 미하네는 고개를 기울이며 두 손으로 제 노트를 돌려받았다.
하야마가 빌려 간지 하루 만에 노트를 돌려주는 일이 생기다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려나. 아니면 설마 갑자기 공부에 취미가 생겼다던가? 글을 쓰는 그녀라지만 이럴 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1학년 때부터 농구부에서 주전으로 뛰었던 하야마는 자주 그녀에게 노트를 빌렸다. 수학 공부도 가르쳐 준 사이고 바로 옆자리였으니, 아마 가벼운 마음으로 빌릴 수 있었겠지. 무엇보다 그녀는 공부를 잘 하는 편이고 노트정리도 깔끔했으니까. 약간 악필인 것은 흠이었지만, 세상에는 그보다 더한 악필도 잔뜩 있으니 문제 될 건 아니었다.
‘보통은 3일은 있어야 돌려주는데’
이제 그도 2학년이고, 나름 공부에 요령이 생긴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괜히 흐뭇해져 웃음이 나왔다. 자신은 선생님도 아닌데 어째서일까. 제 남자친구가 똑똑해 져서? 하지만 자신은 그런 걸 신경 쓸 성격이 아닐 텐데.
어쩌면 자신은 이미 그에 관련된 거면 뭐든 기분이 좋아지는 걸지도 모른다. 속된 말로, 팔불출이란 거지. 제 뺨을 가볍게 문지를 미하네는 노트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미하네는 이제 집에 가?”
“응. 집에서 작업하려고. 코타로는 부 활동?”
“응! 오늘은 늦게 마칠 거야!”
예선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더니. 연습 시간도 저절로 늘었다. 무리하는 건 아닐까 걱정되지만 라쿠잔의 매니저와 감독은 유능한 사람들이니 제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제 손보다 훨씬 큰 하야마의 손을 잡은 그녀는 그가 혹시라도 다치지 않게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있잖아”
“응?”
“…노트, 집에 가서 펴 봐야 해! 알겠지?! 혼자서 봐야 해!!”
“아, 응…”
뭔가 메모라도 끼워놓은 건가. 신이 난 하야마의 표정과 눈빛에서 그의 속셈을 읽은 미하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간혹 그런 일이 있었지’ 그녀는 1학년 때부터 공책을 돌려받을 때 마다 적혀있던 낙서나 메모를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빌려줘서 고마워!’ 그런 감사인사부터 ‘이거 뭐라고 쓴 거야?’ ‘이 부분 이해 잘 안 돼!’ 라는 질문까지. 사소한 것들뿐이지만 혹 공책의 내용을 상하게 할 까봐 포스트잇에 적어 붙여놓은 메모들은 커다란 남고생이 얼마나 귀여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표같이 느껴졌다.
“그럼 난 갈게, 연습 힘내”
“응! 빌려줘서 고마워!”
이번엔 무슨 메모를 해놓았기에 저렇게 신이 난 걸까. 미하네는 평소보다 조금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돌아와 곧바로 제 방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남동생이 지나가며 보지 않게 문까지 제대로 닫은 그녀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가방에서 공책을 꺼냈다. 기분 탓일까. 아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공책이 조금 두꺼워 진 것처럼 느껴졌다.
“…아”
첫 장을 펼치자마자 노란 포스트잇이 자신을 반긴다. ‘미하네!’ 고양이인지 호랑이인지 모를 동물 낙서와 함께 적힌 것은 제 이름. 다음 장으로 넘기자 이번엔 파란 포스트잇이 나타난다. ‘언제나 고마워!’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 적혀있는 탓에 결국 웃음이 터진 그녀는 별 생각 없이 페이지를 넘겼다가 손이 멈춰버렸다.
‘정말 좋아해!’
‘미하네를 생각하며 연습하고 있어!’
‘인터하이 구경 와 줄 거지? 1학년 때처럼 응원해 줘!’
‘같은 반이라 정말 다행이야!’
한 페이지 가득한 포스트잇의 색깔은 짙은 벚꽃 색.
수많은 메모에 잠깐 넋이 나가있던 미하네는 스스로도 얼마만인지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풋…!”
이걸 하느라 빌려갔구나. 필기가 목적이 아니라.
연습 마치고 돌아와 피곤할 얼굴로 일일이 메모를 적고 있을 그를 생각하면 귀엽기 짝이 없다. 로맨틱하긴 하지만, 어쩐지 어린애 장난 같아 귀여운 애정표현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그녀는 포스트잇을 떼지 않고 그대로 공책을 덮었다.
당분간은 이대로 두는 것도 좋겠지.
행복한 기분으로 공책을 끌어안은 그녀는 연습이 마칠 때 쯤 그에게 꼭 전화하겠다 다짐하며 침대에 드러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