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NF 데스페라도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177회 주제 : 신년맞이
신년맞이
written by Esoruen
불어오는 바람의 차가움에 루엔은 대충 걸쳤던 목도리를 다시 여몄다. 올 겨울은 유난히 더 추운 거 같단 생각은 했지만, 오늘은 어째 더 바람이 매섭다. 혹시 올해의 마지막을 기념해 무법지대의 모든 생물들을 얼어죽일 작정인 건가. 발을 동동 구르며 서있던 그녀는 결국 못 버티겠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추워~!!!”
“그러니까 내가 그냥 집에 있자고 했잖아?”
“집에선 잘 안보이잖아?! 그걸 말이라고 해?!”
이런. 날씨 때문인지 루엔은 평소라면 그냥 흘려들었을 딴죽에 매섭게 화를 냈다. 안 그래도 추위에 약한 몸이라 걱정은 했다지만, 제게 짜증을 부릴 건 뭐란 말인가. 데스페라도는 어깨를 으쓱이고 그녀 쪽으로 손을 뻗었다.
“곧 해가 뜰 거야. 네가 나오자고 한 거니 조금만 더 참아”
“으으, 겨울 죽일 거야 으으”
“…진정하고 이쪽으로 붙어. 죽일 수 없는 걸 죽인다고 화내봐야 네 혈압에만 안 좋아”
가볍게 어깨를 잡고 끌어당기자 루엔은 순순히 그의 품으로 파고들어갔다. 그렇게 체온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붙어있다면 홀로 서있는 것 보다는 훨씬 따뜻해지지. 그녀가 춥지 않게 제 쪽으로 바짝 당긴 그는 물고 있던 담배를 미련 없이 버렸다.
“피워도 되는데”
“됐어. 그것보다 해돋이는 갑자기 왜 보러 오자고 한 거야?”
“아니 별건 아니고… 신년 분위기 좀 내려고?”
정말로 별거 아닌 이유였다. 데스페라도는 그녀가 시답잖은 이유로 나오자 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마냥 다행인 것은 아니라 한숨 쉬고 말았다. 뭔가 심각한 이유가 있는 건 제일 싫지만, 심각한 이유도 아닌데 제 몸 생각도 안하고 나오자고 한 것은 싫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도 루엔은 연약함이나 가녀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유난히 추위를 타서 겨울엔 조심해야 하는 편이었으니까.
“우리, 이걸로 몇 년 째 같이 지내는 거지?”
“몇 년이더라… 그래, 7년인가 이제?”
“우와. 길기도 하네”
그건 이쪽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제가 설마 핏줄도 이어지지 않은 상대와 이렇게 오래 동거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핏줄이라 해도 마음에 안 들면 일주일도 같이 못 사는데. 데스페라도는 제 품에서 바람이 불 때 마다 손을 달달 떠는 연인을 빤히 바라보았다. 기가 막힌 아가씨다. 어떻게 제 코를 꿴 걸까. 꿰인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는 루엔이 제게 뭔가 마법이라도 건 것은 아닐지 생각할 때가 있었다.
슬슬 7년이면 그만 사랑스러워 보일 때도 되었을 텐데, 어떻게 아직도 이렇게 볼 때마다,
“루엔”
“응?”
“돌아가면 푹 자. 아침은 내가 할 테니까”
“…진짜? 잠깐, 나 그렇게 아파 보여?”
‘아니’ 고개를 젓는 그의 입가가 부드럽게 올라갔다. ‘흐음’ 앓는 소리를 내며 데스페라도를 빤히 보던 루엔은 그를 따라 씩 웃었다.
“왜 웃어?”
“잘생겨서”
“새삼스럽게”
“…내 입으로 잘생겼다고 했지만 그런 반응 재수 없는 거 알지…?”
“아니라고 하면 뭐가 아니냐면서 정색하잖아?”
‘이 녀석, 나에 대해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루엔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잘 알다마다. 7년이나 같이 지냈는데 모를 리가 있나. 조금은 밉살스러운 그녀의 얼굴에 손가락을 가져간 그는 붉어지는 수평선을 향해 고갯짓 했다.
“해 뜬다, 내 얼굴 그만 보고 저기 봐”
“데스페라도”
“왜?”
여전히 보라는 일출은 안 보고 제 얼굴만 보고 있는 루엔의 눈동자는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수평선을 보던 데스페라도는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자수정 색에 이끌려 저절로 고개를 숙였다. 생사의 경계를 몇 번이고 같이 넘은 연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년엔 더 행복하자”
새해 복 많이 받아. 그런 인사보다 훨씬 추상적인 덕담을 건넨 루엔이 가볍게 그의 볼에 입을 맞췄다. 차가운 뺨에 닿는 차가운 입술. 온기는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애정표현이었지만, 그녀의 볼은 불타는 듯 물들고 있는 바다보다 더 붉은 색이었다.
“…그래, 작년 보다는 더 좋아지겠지”
“음, 그렇고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거야”
“겨울을 죽이니 살리니 한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냐?”
“…잊어버려 그건!”
부끄러워 하기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눌러 삼킨 그는 아까 받은 키스를 그녀의 이마에 돌려주었다. 얼굴이 달아올라 그런 걸까. 새하얀 그녀의 이마는 평소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