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호와 알케미스트 시마자ㅋl 토손 드림
- 오리주 주의. 창작 사서입니다.
- 제 77회 주제 : 만약에
만약에
written by Esoruen
“있잖아, 금기란 뭘까.”
‘물론 말의 의미 말고.’ 혹시나 그녀가 착각할 까봐 토손은 친절하게도 뒤에 명확한 설명을 추가했다. 저런 질문을 왜 제게 하는 걸까. 책을 정리하고 있던 타카라는 놀람과 당황스러움이 뒤엉킨 얼굴로 토손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마치 죽은 생선 같은 그의 눈에는 언제나 음울함이 한가득 들어가 흘러내리고 있다. 그리고 오늘도 마찬가지로, 빛이 없는 그의 눈엔 온갖 어둠이 방울져 보일 듯 말 듯 넘쳐흐르고 있었다.
“글쎄요, 그건 저보다 다른 문호 분들이 더 잘 알 것 같은데….”
타카라의 대답은 지극히 온건하고 부드러웠다. 모른다는 말을 가장 보기 좋게 돌려 말한다면 분명 지금과 같은 문장이 되겠지. 이런 대답을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던 걸까. 토손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젓고 다시 물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필요한 게 아냐. 네 생각이 궁금한 거지.”
“저의?”
“응.”
이럴 때는 조금 기뻐해도 되는 건가. 그녀는 아직 책장에 꽂아야 하는 책을 한가득 안은 채 몸을 돌렸다.
어느 때 보다도 의욕 있어 보이는 토손의 모습을 보아하건데 이건 아마 취재의 일종일 것이다. 왜 자신을 취재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내가 조수 같은 것을 해도 좋을 게 없다.’는 식으로 말한 그가 기꺼이 말을 걸어줬으니 그것만으로도 기뻐할 이유는 충분하다. 타카라는 제법 진지하게 그가 던진 질문에 답해주었다.
“으음, 누군가 그 일을 저질렀을 때 주변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일 나는 것들은 모두 금기가 아닐까요?”
“예를 들면?”
“예라…. 아, 그래. 살인은 보통 금기잖아요? 그건 어떻게 해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으니 모두 금기라 여기는 것 아니겠어요?”
스스로가 생각해도 제법 납득이 가는 대답이었다. 타카라는 자랑스럽게 그리 말하고 토손의 반응을 살폈다.
“…으음, 말 되는 걸. 좋은 대답이네.”
“만족하셨다면 다행이에요. 전 그냥 사서일 뿐인데.”
“사서나 문학가나 다를 건 없어. 인간은 다 비슷비슷 하니까.”
역시나 음울한 반응이다. 이 민망함을 소리죽여 웃는 것으로 흘려 넘긴 그녀는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책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
오늘은 이제 대부분의 일을 끝냈으니, 남은 시간에는 적당히 쉬면서 잠서한 문호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조수인 토손도 취재가 끝난 지금은 저녁이나 먹으러 가거나 쉬러 가겠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러면 말이야”
아무래도 그의 취재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소리죽여 그녀의 뒤로 바짝 붙은 그는 제 두 손을 뒤돌아보지 않는 얼굴로 뻗었다. 한 손으로는 조금만 그어도 피가 날 것 같은 붉은 뺨을 매만지고, 다른 한 손으로는 볼륨감 있는 몸에서 몇 없는 가느다란 부위인 목을 잡는다. 고개를 절대 돌릴 수 없게, 그렇게 타카라의 얼굴을 잡은 토손은 속삭이는 듯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이어갔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등 뒤를 타고 흐르는 목소리가 얼어붙을 듯 차갑다. 분명히 차가운데, 어째서 자신은 땀을 흘리고 있는 걸까. 책을 꽂아 넣던 걸 멈추고 어색한 자세로 서있는 그녀는 제 목에 감긴 손이 그날따라 더욱 싸늘하게 느껴졌다. 마치, 죽은 생선처럼.
“모두가 좋아하는 너를, 이런 내가 좋아하면.”
‘그것도 금기가 되는 걸까?’
그 물음에는 어째서인지 의문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장의 틈틈이 숨어있는 것은 무겁고 진득한 확신. 토손은 지금 묻는 것이 아니라, 확인을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제 감정을, 그리고 제 입장을.
‘만약에’ 두 번이나 반복된 그 단어가 귓가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타카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온 두 번째 질문에 고민할 겨를도 없이 세 번째 질문과 마주해야 했다.
“만약, 그게 금기가 아니라면”
목을 잡았던 손이 조금씩 위로 올라온다. 턱에서 뺨. 뺨에서 머리카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 토손의 손은 부질없게도 그녀의 머리카락 끝에서 방랑자처럼 멈췄다.
“좋아한다고 말해도 돼?”
너를 좋아해.
그의 마지막 말은, 도저히 그렇게 밖에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