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te 시리즈 어새신(5차) 드림
- 오리주 주의
- 제 198회 주제 : 낙서
UBW기반... 입니다... 따흐흑...
낙서
written by Esoruen
오늘도 찾아오는 손님은 없는 건가. 어새신은 조용한 밤이 지겨운지 늘어져라 하품했다. 제 마스터인 캐스터는 오늘도 쿠즈키와 외출 중. 류도사의 유일한 출구인 이 산문은 오가는 이 하나 없다. 정말이지, 문지기의 보람이라곤 느낄 수 없는 한가함이다. 그래도 졸지 않고 여기서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건, 모두 제 옆자리를 지켜주는 마이코 때문이겠지. 그는 오늘따라 말이 없는 그녀를 힐끔 바라 보았다.
평소에는 오늘 있었던 일이나 별에 대한 이야기를 조잘거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해 주는 것이 고마웠는데, 이렇게 입을 다무니 오히려 시간이 더 느리게 가는 것 같다. 물론 그녀와 함께라면 길고 긴 밤도 나쁘지 않지만, 그 긴 밤에서 오가는 대화가 없다면 쓸쓸하기 짝이 없지 않나. 어새신은 입을 다물고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 그녀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뭘 그렇게 열심히 적고 있어?”
“꺅!”
“…이런, 내가 놀라게 한 건가?”
“아, 아니….”
뭔가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도 적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너무 집중해서 제가 말을 건 것 자체에 놀라버린 걸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뺨을 붉히는 마이코는 필사적으로 제 공책을 감추었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한걸. 나는 단지 오늘따라 아가씨가 조용해서 먼저 말을 건 것뿐인데.”
“아, 죄송해요. 기껏 옆에 와서 아무 말도 안 해서….”
“미안해 할 일은 아니지만. 어차피 그 마녀가 시켜서 오는 거잖아?”
“그, 그렇지 않아요! 제가 좋아서 오는 거니까, 네?”
마이코의 눈동자에는 거짓이라곤 담겨있지 않다. 그래.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안다. 하지만 어디 처음부터 그녀가 자의로 제게 다가왔겠는가. 분명히 그녀가 밤마다 제 곁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주게 된 계기엔 캐스터의 부추김이 있었다.
“그래서, 뭘 하느라 날 방치해 둔 걸까. 아가씨?”
“그 호칭, 부끄럽다고 말했잖아요….”
“부끄러워하는 아가씨가 좋아서 말이야.”
‘윽.’ 짧은 감탄사를 내뱉은 마이코의 얼굴이 더더욱 붉게 물든다. 이렇게 순진하니까 캐스터의 부탁도 쉽게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이 성배전쟁에 말려든 거겠지. 코지로는 문득 그녀가 마술 사용자가 아니었거나 성격이 좀 더 야무졌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 성배전쟁의 끝은 분명 비극뿐인데, 어쩌다가….
“그냥 낙서였어요. 별 거 없어요.”
“그러면 왜 감추는 거야?”
“별 거 없으니까…?”
“대답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조금 더 내린 어새신의 시선이 그녀의 공책 위에 정지했다. ‘살짝 빼앗아서 보고 돌려주면 안 될까.’ 하는 충동이 잠깐 들지만, 그랬다간 분명 그녀에게 미움 받고 말 것이다. 그건 곤란하지. 잠시 머물다 사라질 세상, 소환부터가 잘못 된 자신이라지만 눈앞의 이 아가씨에게 미운 털이 박히는 건 절대 사양하고 싶었으니까.
“계속 낙서를 할 거라면 안에 들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밤은 추우니까 말이지. 나는 괜찮지만, 아가씨는 감기에 걸릴 것 같은데.”
“아, 그건 또 좀….”
“응? 곤란한 건가? 왜?”
뭐라 할 변명이 없는 걸까. 우물쭈물하며 시선을 돌리던 마이코가 슬쩍 공책의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맨 윗줄에 쭉 적혀있는 건 알아보기 힘든 용어로 적힌 글들. 광년이 어쩌구 밝기가 저쩌구 하는 것을 보면, 아마 그녀의 전공인 천문학에 대한 메모일 가능성이 높겠지. 읽어도 알아보기 힘든 문장들을 지나 아래쪽으로 시선을 돌린 어새신은 가장자리의 낙서를 보고 웃음이 터져버렸다. 왜 그녀가 그렇게 부끄러워 한 건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푸핫!”
간략하게 3등신으로 그려져있는 캐릭터는 분명 자신과 마이코다. 낙서 치고는 꽤나 귀여운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공책 위쪽에 그려진 별을 보고 있었고, 아직 다 그려지지 않은 밤하늘의 달에는 토끼로 추정되는 무언가도 그려져 있었다.
“그림도 잘 그리잖아, 아가씨. 게다가 제법 닮았는걸.”
“아, 아니에요. 코지로 씨는 훨씬 잘생겼어요!”
“그거 고맙네. 그래. 아직 다 못 그려서 들어갈 수 없는 건가?”
부끄러움에 목소리도 안 나오는 건지 마이코는 고개만 끄덕여 제 의사를 전달했다. 이런 경우라면 침묵도 그리 나쁘지 않지. 제 턱을 쓰다듬으며 미소 짓는 어새신은 그녀의 옆에 슬쩍 자리잡아 앉았다.
“그럼, 완성 때 까지는 조용해도 참아보도록 할까.”
“가, 감사합니다….”
“대신, 그림은 나 주는 걸로.”
“…네….”
공책으로 입을 가린 그녀가 겨우 웃어 보인다. 역시 부끄러워하는 얼굴도 좋지만, 이렇게 수줍게 웃는 쪽이 더 보기가 좋다. 괜히 기분이 좋아진 어새신은 바람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숲으로 고개를 돌렸다.